태화일적 1000

태화일적(泰華一滴) 173

【173】 累卵 晉靈公 建九層之臺 三年不起 有臣荀息 諫曰 臣能累十二棊子 又加九卵在其上 公曰 危哉 息曰 不危 公造九層之臺 三年不成 男不耕 女不織 其危甚矣 公聞之 遂止也 〖禪林寶訓音義〗 누란(累卵) 진영공(晉靈公)이 9층의 대(臺)를 건립했으나 3년 동안 일으키지 못했다. 순식(荀息)이란 신하가 있어 간(諫)해 가로되 신이 능히 12개의 바둑돌을 포개고 또 9개의 새알(卵)을 더하여 그 위에 두겠습니다. 공(公)이 가로되 위험하다. 순식이 가로되 위험하지 않습니다. 공이 9층의 대를 조성했으나 3년 동안 이루지 못해 남자는 경작하지 못하고 여자는 방직(紡織)하지 못했으니 그 위험이 심합니다. 공이 이를 듣고 드디어 중지시켰다.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72

【172】 龐居士因賣竹摝籬 下橋喫撲 女子靈照一見亦倒爺邊 士云 你作甚麽 女云 見爺倒地 某甲相扶 士云 賴是無人見 〖禪林類聚十七〗 방거사(龐居士; 龐蘊居士니 馬祖를 이었음)가 죽녹리(竹摝籬; 대 笊籬)를 팔고는 다리에서 내려오다 끽박(喫撲; 땅에 넘어짐)함으로 인해 여자 영조(靈照)가 한 번 보자 또한 아버지 가에 넘어졌다. 거사가 이르되 네가 무엇을 하느냐. 여자가 이르되 아버지가 땅에 넘어짐을 본지라 모갑이 상부(相扶)합니다. 거사가 이르되 다행히(賴是) 보는 사람이 없다.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70

【170】 先聖甞喩 孔子答魯哀公語 人喩以爲舟 情喩之如水 然則水本能載舟 忽然風逆浪生 覆舟亦爲水也 〖禪林寶訓筆說上〗 선성(先聖)이 일찍이 비유했다. 공자가 노애공(魯哀公)에게 답해 말하기를 사람은 비유로 배가 되고 정(情)은 비유로 물과 같다. 그러한 즉 물은 본래 능히 배를 싣는다. 홀연히 바람이 거슬러 파랑(波浪)이 생기(生起)하여 배를 엎는 것도 또한 물이 된다.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69

【169】 昔有禪僧鄧隱峰 未出家時 曾射一猿子 墮地而終 *須臾 猿母亦墮而死 因剖腹開 見肝腸寸寸而斷 遂捨其射業 因此出家 是知人形獸質 受報千差 愛結情根 其類一等 〖萬善同歸集上〗 옛날에 등은봉(鄧隱峰; 馬祖道一의 法嗣)이란 선승이 있었다. 출가하지 아니한 때 일찍이 한 마리의 원숭이 새끼를 쏘았는데 땅에 떨어져 죽었다. 수유(*須臾)에 원숭이 어미도 또한 떨어져 죽었다. 인하여 배를 갈라 열어 간장(肝腸)을 보니 마디마디 끊어졌었다. 드디어 그 쏘는 업을 버리고 이로 인해 출가했다. 이로 알지니 사람의 형제와 짐승의 바탕이 과보를 받음은 천차지만 애결(愛結)과 정근(情根)은 그 종류가 일등(一等; 동일)하다. *須臾; 혜림음의25(慧琳音義二十五). 옥편(玉篇)에 가로되 수유(須臾)는 아경(俄頃; 少時. 잠시)이다.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68

【168】 史 平原君傳曰 平原君合從于楚 得食客十九人 毛遂自薦曰 臣得如錐之處囊中 乃脫穎而去 非特末見而已 〖禪林疏語考證二〗 사(史; 史記) 평원군전에 가로되 평원군이 초와 합종(合從)하려 하면서 식객 19인을 얻었다. 모수(毛遂)가 스스로 천거하며 가로되 신이 마치 송곳이 주머니 속에 처함 같음을 얻었는데 이에 탈영(脫穎; 뾰족한 끝이 튀어나옴)하면 특히 끝이 나타날 따름만이 아닐 것입니다.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67

【167】 莊子釣於濮水 楚王使二大夫往召焉 曰 願以境內累矣 莊子曰 楚有神龜 死已三千歲矣 王巾笥藏之廟堂之上 此龜者 寧其死爲留骨而貴乎 寧其生曳尾於塗中乎 二大夫曰 寧生而曳尾於塗中 莊子曰 往矣 吾將曳尾於塗中矣 〖祖庭事苑六〗 장자(莊子)가 복수(濮水; 濮은 물 이름)에서 낚시질했는데 초왕(楚王; 釋文에 楚威王이라 함)이 두 대부(大夫)를 시켜 가서 부르게 했다. 가로되 원컨대 경내(境內; 國政을 말함)로써 누(累)를 끼칠까 합니다(국정을 맡겨 心勞를 끼칠까 한다는 뜻). 장자가 가로되 초(楚)에 신귀(神龜)가 있어 죽은 지 이미 3천 세며 왕이 건사(巾笥; 巾은 巾箱이니 상자. 笥는 상자 사. 곧 상자에 넣음)하여 묘당(廟堂)의 위에 그것을 감춰 두었다는데 이 거북이란 것이 차라리 그 죽어서 뼈를 남김이 소중하겠습..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66

【166】 攫金 上 爪持也列子云 昔齊人有欲金者 淸旦衣冠之市 適鬻金之所 竊金而去 金主捕之曰 人皆在焉 子何攫人之金 答曰 取金之時不見其人 而獨見其金 言人貪其利而忘其耻 見其利而忘其害也 〖禪林寶訓音義〗 확금(攫金) 상(上; 윗 글자)은 손톱으로 가짐이다. 열자(列子)에 이르되 옛적에 제(齊)나라 사람이 금을 탐욕하는 자가 있었다. 맑은 아침에 의관(衣冠)을 하고 시장에 갔다. 금을 파는 곳에 가서 금을 훔쳐 떠나는데 금주(金主)가 그를 체포해 가로되 사람이 다 있거늘 자네는 왜 남의 금을 움켰는가. 답해 가로되 금을 취할 때 그 사람은 보이지 않고 유달리 그 금만 보였습니다. 말하자면 사람이 그 이익을 탐하고 그 부끄러움을 잊음이며 그 이익만 보이고 그 해를 잊음이다.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63

【163】 *梁山泊裏稱豪傑 看來都是不良人 〖宗門拈古彙集二十二〗 양산박(*梁山泊) 속에선 호걸이라고 일컫지만 보매 모두 이 불량한 사람들이다. *梁山泊; 못의 이름. 산동성(山東省) 수장현(壽張縣) 동남 양산(梁山)에 위치함. 천험(天險)의 요지(要地). 수호전(水滸傳)의 송강(松江)ㆍ오용(吳用) 등 108원(員)의 의사(義士)가 여기에 모인 연고로 의인(義人) 등의 집회의 뜻으로 쓰임.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62

【162】 東坦 晉王羲之 王導從子也 郗鑒使門生求女壻於導 導令就東廂徧觀子弟門生 歸曰 王氏諸少並佳 然聞言各自矜持 惟一人在東床坦腹食 獨若不聞 鑒曰 此佳壻 訪之乃羲之 遂妻以女 〖禪林疏語考證三〗 동탄(東坦) 진(晉)의 왕희지는 왕도(王導)의 종자(從子; 조카)다. 치감(郗鑒)이 문생(門生; 문하생)을 시켜 왕도에게 여서(女壻; 사위)를 구했다. 왕도가 동상(東廂; 廂은 행랑)으로 나아가 자제와 문생을 두루 보게 했다. 돌아가서 가로되 왕씨의 여러 소년들이 모두 휼륭했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걸 들어보니 각자 긍지(矜持;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써 가지는 자랑)하였고 오직 한 사람만이 동상(東床)에서 탄복(坦腹; 배를 드러내고 편안히 누움)하고 먹으면서 유독 듣지 않은 것과 같았습니다. 치감이 가로되 이것이 좋은 사윗..

태화일적 2020.11.07

태화일적(泰華一滴) 161

【161】 萊子之衣 高士傳云 老萊子孝養親 年七十父母猶存 身著五色斒衣 爲嬰兒戲於親前 取食上堂詐跌臥地爲兒啼 欲親之喜 〖禪林疏語考證一〗 내자지의(萊子之衣) 고사전(高士傳; 3권. 삼국 西晉時期의 학자 皇甫謐이 지었음)에 이르되 노래자(老萊子)가 효성으로 양친(養親)했다. 나이 70에도 부모가 오히려 생존했다. 몸에 5색(色) 반의(斒衣; 얼룩덜룩한 옷. 곧 색동)를 입고 영아(嬰兒)가 되어 양친 앞에서 희롱했다. 밥을 취해 당(堂)에 오르면서 일부러 미끄러지며 땅에 누우면서 아이의 울음을 지었는데 양친을 기쁘게 하려고 함이었다.

태화일적 2020.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