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589쪽

태화당 2019. 11. 9. 11:15

石濤(1642-1707) 明末淸初僧 俗姓朱 字石濤 號瞎尊者 苦瓜和尙 別號甚多 因仰慕宋代道濟禪師 故亦號道濟 顚僧 桂林(今屬廣西)人 明靖江王朱亨嘉之子 或稱楚王子 隆武元年(1645) 于全州剃髮出家 參旅庵本月 得別傳之旨 後繼其法 初住宣州敬亭山 康熙四十一年(1702) 遷金陵一枝寺 博通世學 工詩善畫 精於草隸 著有苦瓜和尙畫語錄 以畫法闡明禪理 以禪理闡明畫法 融禪法于繪畫之中 [淸史稿二九]

석도(石濤) (1642-1707) 명말청초의 승려. 속성은 주()며 자는 석도(石濤)며 호는 할존자(瞎尊者)ㆍ고과화상(苦瓜和尙)이니 별호가 매우 많음. 송대 도제선사(道濟禪師)를 앙모함으로 인해 고로 또한 호가 도제(道濟)ㆍ전승(顚僧)이니 계림(지금 광서에 속함) 사람. () 정강왕(靖江王) 주형가의 아들이며 혹 일컫기를 초왕자(楚王子)라 함. 융무 원년(1645) 전주에서 버리를 깎고 출가했으며 여암본월(旅庵本月)을 참해 별전(別傳)의 의지(意旨)를 얻었고 후에 그의 법을 이었음. 처음엔 선주 경정산에 거주했고 강희 41(1702) 금릉 일지사로 옮겼음. 세학(世學)에 박통했고 시에 공교(工巧)하고 그림을 잘 그렸고 초예(草隸)에 정통했음. 저서에 고과화상화어록(苦瓜和尙畫語錄)이 있으니 화법(畫法)으로 선리(禪理)를 천명(闡明)하고 선리로 화법을 천명하여 선법을 회화(繪畫)의 가운데 융합했음 [청사고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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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頭】 ①卽石 頭 助詞 聯燈會要十二石門慧昭 云 如何是石門山 云 石頭大底大 小底小 石頭希遷禪師 五宗錄四洞山 擧 五洩到石頭處云 一言相契卽住 不契卽去 石頭據坐

석두(石頭) 곧 석이니 두는 조사. 연등회요12 석문혜소. 이르되 무엇이 이 석문산입니까. 이르되 석두(石頭)가 큰 것은 크고 작은 것은 작다. 석두희천선사. 오종록4 동산. ()하다. 오설(五洩)이 석두(石頭)의 처소에 이르러 이르되 일언이 서로 계합하면 곧 머물고 계합하지 않으면 곧 가겠습니다. 석두가 거좌(據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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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頭山位於江蘇江寧之西約一公里處 山下有淸涼寺 法眼文益及淸涼泰欽曾住持此寺

석두산(石頭山) 강소 강녕의 서쪽 약 1곳에 위치함. 산 아래 청량사가 있으며 법안문익 및 청량태흠이 일찍이 이 사원에 거주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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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頭城法眼文益所住金陵淸凉院在處 五家正宗贊四淸涼法眼 唯心唯識 石頭城路列千差

석두성(石頭城) 법안문익이 거주한 곳인 금릉 청량원이 있던 곳. 오가정종찬4 청량법안. 유심유식(唯心唯識)이여, 석두성(石頭城)의 도로가 천차(千差)로 나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