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示衆云 大道只在目前 要且難覩 僧乃問 目前有何形段令學人覩 師云 任你江南江北 學云 和尙豈無方便爲人 師云 適來問什麽
●大道只在目前; 傳燈錄二十九 梁寶誌和尙大乘讚 大道常在目前 雖在目前難覩 若欲悟道眞體 莫除聲色言語
●要且; 終是 然而 却
스님이 시중(示衆)해 이르되 대도가 다만 목전에 있지만(大道只在目前) 요차(要且; 도리어. 終乃) 보기가(覩) 어렵다. 중이 이에 묻되 목전에 어떤 형단(形段)이 있기에 학인으로 하여금 보게 하십니까. 사운 너의 강남, 강북에 일임한다. 학운(學云) 화상이 어찌 방편으로 위인(爲人)함이 없겠습니까. 사운 적래(適來; 조금 전) 무엇을(什麽) 물었느냐.
●大道只在目前; 전등록29 양(梁) 보지화상대승찬(寶誌和尙大乘讚) 대도가 늘 목전에 있나니/ 비록 목전에 있으나 보기(覩) 어렵다/ 만약 도의 진체(眞體)를 깨치고자 한다면/ 성색과 언어를 제하지 말아라.
●要且; 종시(終是; 끝내. 종내). 연이(然而; 그러나). 각(却; 도리어).
問 入法界來 還知有也無 師云 誰入法界 學云 與麽卽入法界不知去也 師云 不是寒灰死木 花錦成現百種有 學云 莫是入法界處用也無 師云 有什麽交涉
●法界; 一意識(六識之一)所認知的一切對象的統稱 二全部世界 一切事物 三萬事萬物的本源和本性 此指三
묻되 법계(法界)에 들어왔습니다. 도리어 지유(知有; 환히 알다)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누가 법계에 들었느냐(入). 학운(學云) 그렇다면(與麽) 곧 법계에 들어도 감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사운 이 한회(寒灰)와 사목(死木)이 아니라 화금(花錦)이 성현(成現)하여 백종(百種)이 있다. 학운(學云) 이는 법계처(法界處)에 들어 씀(用)이 아니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무슨(什麽) 교섭(交涉)이 있으랴.
●法界; 1. 의식(6식의 하나)으로 인지하는 바의 일체의 대상의 통칭. 2. 전부의 세계. 일체의 사물. 3. 만사와 만물의 본원과 본성. 여기에선 3을 가리킴.
問 若是實際理地 什麽處得來 師云 更請闍黎宣一遍
●實際理地; 眞實際極之意 卽指絶離虛妄之涅槃實證 又指眞如之理體 禪宗常用實際理地一語 表示超越斷絶一切差別妄見的平等一如之世界 或眞實究竟之境地 ▲金剛三昧經 佛言 實際之法 法無有際 無際之心 則入實際 ▲大智度論三十二 實際者 以法性爲實 證故爲際 如阿羅漢名爲住於實際 (中略)善入法性 是爲實際 (中略)實際卽涅槃
●一遍; 遍 量詞 相當于次回
묻되 만약 이 실제이지(實際理地)라면 어느 곳에서 얻어 왔습니까. 사운 사리(闍黎)가 일편(一遍) 선양(宣揚; 宣)함을 다시 청한다.
●實際; 진실제(眞實際)의 궁극의 뜻. 곧 허망을 절리(絶離)한 열반의 실증(實證)을 가리킴. 또 진여의 이체(理體)를 가리킴. 선종에서 상용하는 실제이지(實際理地)의 1어(語)는 일체의 차별과 망경(妄見)을 초월하고 단절한 평등일여(平等一如)의 세계, 혹 진실구경(眞實究竟)의 경지를 표시함. ▲금강삼매경. 불타가 말씀하셨다. 실제(實際)의 법은 법에 유제(有際)가 없으며 무제(無際)의 마음이 곧 실제에 들어간다. ▲대지도론32. 실제(實際)란 것은 법성으로 실(實)을 삼고 증(證)하는 고로 제(際)가 된다. 아라한을 이름하여 실제에 머문다 함과 같다 (중략) 법성에 잘 들어감이 이 실제가 된다 (중략) 실제는 곧 열반이다.
●一遍; 편(遍)은 양사. 차(次)ㆍ회(回)에 상당함.
問 萬境俱起 還有惑不得者也無 師云 有 學云 如何是惑不得者 師云 你還信有佛法否 學云 信有佛法 古人道了 如何是惑不得者 師云 爲什麽不問老僧 學云 問了也 師云 惑也
묻되 만경(萬境)이 함께(俱) 일어나면 도리어 혹(惑)을 얻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운 있다. 학운(學云) 무엇이 이 혹(惑)을 얻지 않는 자입니까. 사운 네가 도리어 불법이 있음을 믿느냐. 학운 불법이 있음을 믿나니 고인(古人)이 말해 마쳤습니다. 무엇이 이 혹(惑)을 얻지 않는 자입니까. 사운 무엇 때문에 노승에게 묻지 않느냐. 학운 물어 마쳤습니다. 사운 혹(惑)이다.
問 未審古人與今人還有近也無 師云 相近卽相近 不同一體 學云 爲什麽不同 師云 法身不說法 學云 法身不說法 和尙爲人也無 師云 我向惠裏答話 學云 爭道法身不說法 師云 我向惠裏救你阿爺 他終不出頭
●阿爺; 爺 父親 阿 前綴
묻되 미심하오니 고인과 금인이 도리어 가까움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사운 상근(相近)하기는 곧 상근(相近)하지만 부동(不同)한 일체(一體)다. 학운(學云) 무엇 때문에 부동합니까. 사운 법신(法身)은 설법하지 않는다. 학운 법신이 설법하지 않거늘 화상은 위인(爲人)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나는 혜(惠; 恩惠) 속을 향해 답화(答話)한다. 학운 어찌 법신이 설법하지 않는다고 말하겠습니까. 사운 내가 혜(惠) 속을 향해 너의 아야(阿爺; 아버지)를 구제(救濟; 救)하려고 해도 그(他)가 마침내 출두(出頭)하지 않는구나.
●阿爺; 야(爺)는 부친이며 아는 전철(前綴; 접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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