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5책(ㅅ)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5책(ㅅ) 604쪽

태화당 2019. 11. 10. 09:33

石霜暉唐代僧 依潭州石霜慶諸受法 繼主法席 [五燈會元六]

석상휘(石霜暉) 당대승. 담주 석상경제에게 의지해 법을 받았고 법석을 계주(繼主)했음 [오등회원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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析析同晰晰 光亮貌 祖堂集十九香嚴 四威儀中 淨潔析析 機感相投 一時拋擲

석석(析析) 석석(晰晰)과 같음. 빛이 밝은 모양. 조당집19 향엄. 4위의 내에 정결하고 석석(析析)하면서 기감(機感)이 상투(相投)하더라도 일시에 던져버려라(拋擲).


淅淅象聲詞 形容風聲 宏智廣錄八 風樹葉頹淅淅 秋山骨瘦棱棱

석석(淅淅) 상성사. 바람 소리를 형용. 굉지광록8. 풍수(風樹)의 잎이 떨어지며 석석(淅淅)하고 추산(秋山) 은 뼈처럼 야위어 능릉(棱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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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成金淸代揚州人 字天基 號惺齋 著有傳家寶四集 係以居家尋常事 演以俚俗語 意存激勸 頗行世上 內含禪宗直指一卷 爲宗門所重 乾隆(1736-1795)初年卒 享年八十餘

석성금(石成金) 청대 양주 사람이니 자는 천기며 호는 성재. 저서에 전가보(傳家寶) 4()이 있는데 이는 거가(居家)의 심상사(尋常事)를 이속어(俚俗語)로 부연(敷演)했고 뜻이 격려에 있으며 자못 세상에 행함. 안에 선종직지(禪宗直指) 1권을 포함했는데 종문에서 소중하게 여김. 건륭(1736-1795) 초년에 죽었고 향년은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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石崇(249-300) 字季倫 小名齊奴 渤海南皮(今河北南皮東北)人 西晉開國元勳石苞第六子 西晉時期文學家 官員 富豪 在任上劫掠往來富商 因而致富 賈后專權時 石崇阿附外戚賈謐 永康元年(300) 賈后等爲趙王司馬倫所殺 司馬倫黨羽孫秀向石崇索要其寵妾綠珠不果 因而誣陷其爲亂黨 遭夷三族 晉惠帝復位後 以九卿禮安葬石崇 [百度百科] 請益錄第三十則 當堂無影迹(窮便窮如范丹) 遍界不曾藏(富便富如石崇)

석숭(石崇) (249-300) 자는 계륜이며 어릴 적 이름은 제노니 발해 남피(지금의 하북 남피 동북) 사람. 서진(西晉) 개국원훈(開國元勳) 석포의 제6. 서진시기의 문학가ㆍ관원ㆍ부호(富豪). 재임상(在任上) 왕래하는 부상(富商)을 겁략(劫掠)하여 이로 인해 치부(致富)했음. 가후(賈后)가 전권(專權)할 때 석숭이 외척 가밀에게 아부했음. 영강 원년(300) 가후 등이 조왕(趙王) 사마륜에게 소살(所殺)되자 사마륜당(司馬倫黨) 우손수(羽孫秀)가 석숭을 향해 그의 총첩(寵妾) 녹주(綠珠)를 색요(索要)했으나 불과(不果; 결과가 없음)하자 이로 인해 그가 난당(亂黨)이 된다고 무함(誣陷)했고 이삼족(夷三族; 3족을 멸함)을 만났음. 진혜제(晉惠帝)가 복위한 후 9()의 예()로 석숭을 안장(安葬)했음 [백도백과]. 청익록 제30. 당당(當堂)하여 그림자 자취가 없으나 (빈궁하기는 곧 빈궁하기가 范丹가 같다) 편계(遍界)에 일찍이 감추지 않았다 (부유하기는 곧 부유하기가 石崇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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