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 萬法本閑 而人自閙 是什麽人語 師云 出來便死
●萬法本閑 而人自閙; 語出忠國師碑 乃草堂沙門飛錫撰 [祖庭事苑一]
묻되 만법이 본래 한가하지만 사람이 스스로 시끄럽게 한다(萬法本閑 而人自閙). 이는 어떤 사람의 말입니까. 사운 나오면 바로 죽는다.
●萬法本閑 而人自閙; 말이 충국사비(忠國師碑)에 나오나니 곧 초당사문(草堂沙門) 비석(飛錫)이 지었음 [조정사원1] .
問 不是佛 不是物 不是衆生 這箇是斷語 如何是不斷語 師云 天上天下 唯我獨尊
묻되 이 불(佛)이 아니며 이 물(物)이 아니며 이 중생이 아니다 하니 저개(這箇)는 이 단어(斷語; 끊는 말)입니다. 무엇이 이 부단어(不斷語)입니까. 사운 천상천하에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
問 如何是毗盧圓相 師云 老僧自小出家 不曾眼花 學云 和尙還爲人也無 師云 願你長見毗盧圓相
●毗盧; 毘盧遮那之略稱 爲佛之報身或法身 又作毘盧舍那 毘樓遮那 毘盧折那 吠嚧遮那 略稱盧舍那 盧遮那 遮那 此云遍一切處 遍照 光明遍照 大日遍照 淨滿 廣博嚴淨 ▲慧琳音義二十一 毘盧遮那 案梵本毘字 應音云無廢反 此云種種也 毘盧遮那 云光明遍照也 言佛於身智 以種種光明 照衆生也 或曰 毘 遍也 盧遮那 光照也 謂佛以身智無礙光明 遍照理事無礙法界也 ▲大毘盧遮那成佛經疏一 梵音毘盧遮那者 是日之別名 卽除暗遍明之義也 然世間日則有方分 若照其外 不能及內 明在一邊 不至一邊 又唯在晝 光不燭夜 如來智慧日光 則不如是 遍一切處 作大照明矣
●眼花; 又作眼華 空華 空花 指空中之華 蓋空中原無華 然眼有病疾者 因眼中有翳 常於空中妄見幻化之華 比喩本無實體之境界 由於妄見而起錯覺 以爲實有
묻되 무엇이 이 비로(毗盧)의 원상(圓相)입니까. 사운 노승은 어릴 적부터(自小) 출가하여 일찍이 안화(眼花)하지 않았다. 학운(學云) 화상은 도리어 위인(爲人)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원컨대 네가 늘(長) 비로의 원상을 보아라.
●毗盧; 비로자나(毘盧遮那; 梵 Vairocana)의 약칭. 불타의 보신 혹 법신이 됨. 또 비로사나(毘盧舍那)ㆍ비루자나(毘樓遮那)ㆍ비로절나(毘盧折那)ㆍ폐로자나(吠嚧遮那)로 지음. 약칭이 로사나(盧舍那)ㆍ로자나(盧遮那)ㆍ자나니 여기에선 이르되 편일체처ㆍ편조ㆍ광명편조ㆍ대일편조(大日遍照)ㆍ정만(淨滿)ㆍ광박엄정(廣博嚴淨)임. ▲혜림음의21. 비로자나(毘盧遮那) 범본의 비자(毘字)를 안험컨대 응당 음을 이르되 무폐반(無廢反)이라야 한다. 여기에선 이르되 종종(種種)이다. 비로자나는 이르자면 광명편조(光明遍照)니 불타의 신지(身智)를 말함이다. 갖가지 광명으로 중생을 비춤이다. 혹 가로되 비(毘)는 편(遍)이며 로자나(盧遮那)는 광조(光照)니 이르자면 불타가 신지(身智)의 무애광명으로 이사무애법계를 편조(遍照)함이다. ▲대비로차나성불경소1. 범음으로 비로자나(毘盧遮那)란 것은 이 해의 별명이다. 곧 어둠을 제거하고 두루 밝힘의 뜻이다. 그러나 세간의 해는 곧 방면의 분한이 있다. 만약 그 밖을 비추면 능히 안에 미치지 못하고 광명이 1변에 있으면 1변에는 이르지 못하고 또 오직 낮에만 있고 광명이 밤을 비추지 못한다. 여래의 지혜의 일광은 곧 그렇지 않아서 일체처에 두루하여 대조명을 짓는다.
●眼花; 안화(眼花) 또 안화(眼華)ㆍ공화(空華)ㆍ공화(空花)로 지음. 공중의 꽃을 가리킴. 대개 공중에 원래 꽃이 없으나 그러나 눈에 병질(질병)이 있는 자가 안중에 가림(翳)이 있음으로 인하여 늘 공중에서 망령되이 환화(幻化)의 꽃을 봄. 본래 실체가 없는 경계가 망견(妄見)으로 말미암아 착각을 일으켜 실유(實有)로 삼음에 비유함.
問 佛祖在日 佛祖相傳 佛祖滅後 什麽人傳 師云 古今總是老僧分上 學云 未審傳箇什麽 師云 箇箇總屬生死 云 不可埋沒却祖師也 師云 傳箇什麽
●分上; 分數 形便 資格 境地
묻되 불조(佛祖)가 재일(在日; 在世하던 날)엔 불조가 상전(相傳)하거니와 불조가 멸후(滅後)엔 어떤(什麽) 사람이 전합니까. 사운 고금이 모두(總) 이 노승의 분상(分上)이다. 학운(學云) 미심하오니 저(箇) 무엇을 전합니까. 사운 개개(箇箇)가 모두(總) 생사(生死)에 속했다. 이르되 조사를 매몰해버림(埋沒却)은 옳지 못합니다. 사운 저(箇) 무엇을 전했느냐.
●分上; 분수ㆍ형편ㆍ자격ㆍ경지.
問 凡聖俱盡時如何 師云 願你作大德 老僧是障佛祖漢
묻되 범성(凡聖)이 모두 없어질 때 어떻습니까. 사운 원컨대 너는 대덕(大德)이 되어라. 노승은 이, 불조를 장애하는 남자(漢)다.
問 遠聞趙州 到來爲什麽不見 師云 老僧罪過
묻되 멀리서 조주를 들었는데 도래하매 무엇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까. 사운 노승의 죄과(罪過)다.
問 朗月當空 未審室中事如何 師云 老僧自出家 不曾作活計 學云 與麽卽和尙不爲今時也 師云 自疾不能救 焉能救諸疾 學云 爭柰學人無依何 師云 依卽踏著地 不依卽一任東西
●活計; 一生活之計策 禪錄中多比喩禪法或種種機用作略 二生活的工具家産 比喩俗情妄念 此指一
●今時; 此處指當今當下的情境機緣 [趙州錄校註集評]
묻되 낭월(朗月)이 당공(當空)했습니다. 미심하오니 실중사(室中事)가 어떻습니까. 사운 노승은 출가함으로부터 일찍이 활계(活計)를 짓지 않았다. 학운(學云) 이러하다면(與麽) 곧 화상은 금시(今時)를 위하지 않음입니다. 사운 자기의 질병(疾)도 구제(救濟; 救)하지 못하거늘 어찌(焉) 능히 제질(諸疾)을 구제하겠는가. 학운 학인은 의(依)함이 없음을 어찌하겠습니까(爭柰). 사운 의(依)하면 곧 땅을 답착(踏著)하고 의(依)하지 않으면 곧 동서(東西)로 일임한다.
●活計; 1. 생활(生活)의 계책(計策)이니 선록 중에 다분히 선법(禪法) 혹은 갖가지 기용(機用)의 작략(作略)에 비유함. 2. 생활의 공구(工具)와 가산(家産)임. 속정(俗情)의 망념(妄念)에 비유함.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今時; 이곳에선 당금(當今)ㆍ당하(當下)의 정경(情境)ㆍ기연(機緣)을 가리킴 [조주록교주집평].
問 在心心不測時如何 師云 測阿誰 學云 測自己 師云 無兩箇
●兩箇; 指能測之心與被測之心 [趙州錄校註集評]
묻되 마음에 있으나 마음으로 헤아리지(測) 못할 때 어떻습니까. 사운 아수(阿誰; 누구)를 헤아리는가. 학운(學云) 자기를 헤아립니다. 사운 양개(兩箇)가 없다.
●兩箇; 능측(能測)의 마음과 피측(被測)의 마음을 가리킴 [조주록교주집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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