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조주록(趙州錄) 44

태화당 2026. 7. 27. 07:31

問 祖佛大意合爲什麽人 師云 只爲今時 學云 爭柰不得何 師云 誰之過 學云 如何承當 師云 如今無人承當得 學云 與麽卽無依倚也 師云 又不可無却老僧

承當; 承受機緣 領悟禪法

 

묻되 조불(祖佛)의 대의(大意)는 합당히 어떤 사람을 위합니까. 사운 다만 금시(今時)를 위한다. 학운(學云) 얻지 못함을 어찌하겠습니까. 사운 누구의 허물이냐. 학운 어떻게 승당(承當)해야 합니까. 사운 여금에 승당(承當)을 얻을 사람이 없다. 학운 이러하다면(與麽) 곧 의의(依倚; 의지해 기댐)가 없겠습니다. 사운 또 노승을 없애버림은 옳지 못하다.

承當; 기연을 승수(承受)하여 선법을 영오(領悟).

 

了事底人如何 師云 正大修行 學云 未審和尙還修行也無 師云 著衣喫飯 學云 著衣喫飯尋常事 未審修行也無 師云 你且道我每日作什麽

了事; 一明事理 會辦事 二禪家謂了悟眞如本性 了結生死大事爲了事 三禪家又將善於通過語言來表說 或獲取知識見解稱作了事 幷非眞正了却參禪大事 此指二

 

묻되 요사(了事)한 사람은 어떻습니까. 사운 바로 크게 수행한다. 학운(學云) 미심하오니 화상은 도리어 수행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착의끽반(著衣喫飯; 옷 입고 밥 먹음)한다. 학운 착의끽반은 심상사(尋常事)입니다. 미심하오니 수행입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네가 차도(且道)하라, 내가 매일 무엇을 짓느냐.

了事; 1. 사리를 밝힘. 판사(辦事; 공무를 처리함)를 앎. 2. 선가에서 이르기를 진여의 본성을 요오(了悟)하여 생사대사를 요결(了結)함을 요사(了事)라 함. 3. 선가가 또 어언을 통과하여 표설(表說)함을 잘하거나 혹 지식의 견해를 획취(獲取)함을 가지고 요사(了事)라고 호칭함. 모두 진정으로 참선의 대사를 요각(了却; 끝을 맺다)함이 아님. 여기에선 2를 가리킴.

 

郞中問 大善知識還入地獄也無 師云 老僧末上入 崔云 旣是大善知識 爲什麽入地獄 師云 老僧若不入 爭得見郞中

郞中; 秦代以後的官名 補佐尙書之政務 事物紀原五曰 漢置尙書郞 初止稱守郞中 晉武帝始置諸曹郞中 唐以來號正郞 武德三年(620)尙書郞改爲郞中 按秦有郞中 令臣瓚以爲主郞內諸官 則郞中秦官也

地獄; <> naraka niraya <> niraya 爲五道之一 六道之一 三惡道之一 玄應音義六 地獄 梵言泥黎耶 或言泥囉夜 或云那落迦 此云不可樂 亦云非行 謂非法行處也

末上; 玉篇 末 端也 末上有二義 一最初之義 二最後之義 此指二

 

최낭중(郞中)이 묻되 대선지식도 도리어 지옥(地獄)에 들어갑니까 또는 아닙니까. 사운 노승은 말상(末上; 마지막)에 들어갑니다. 최가 이르되 이미 이 대선지식이시거늘 무엇 때문에 지옥에 들어갑니까. 사운 노승이 만약 들어가지 않는다면 어찌 낭중을 득견(得見)하겠습니까.

郞中; 진대(秦代) 이후의 벼슬 이름. 상서의 정무를 보좌했음. 사물기원5에 가로되 한()에서 상서랑을 설치했는데 처음엔 다만 수랑중(守郞中)으로 호칭했다. 진무제(晉武帝)가 비로소 제조낭중(諸曹郞中)을 설치했다. 당 이래로는 호가 정랑(正郞)이었는데 무덕 3(620) 상서랑을 고쳐 낭중(郞中)으로 삼았다. 안험컨대 진()에 낭중이 있었으며 신찬(臣瓚)으로 하여금 주랑(主郞)을 삼고 제관(諸官)을 받아들였으니 곧 낭중은 진관(秦官)이었음.

地獄; <> naraka niraya. <> niraya. 5()의 하나, 6도의 하나, 3악도의 하나가 됨. 현응음의6. 지옥(地獄) 범언(梵言)으로 니리야(泥黎耶), 혹은 말하되 니라야(泥囉夜), 혹은 이르되 나락가(那落迦)는 여기에선 이르되 가히 즐겁지 않음(不可樂)이며 또는 이르되 비행(非行)이니 이르자면 비법(非法)을 행하는 곳이다.

末上; 옥편 말() (; 처음. )이다. 말상에 두 뜻이 있음. 1. 최초의 뜻. 2. 최후의 뜻.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毫釐有差時如何 師云 天地懸隔 云 毫釐無差時如何 師云 天地懸隔

毫釐; 同毫氂 氂 量詞 後作釐 玄應音義三 十毫曰氂 今皆作釐

 

묻되 호리(毫釐)라도 어긋남이 있을 때 어떻습니까. 사운 천지현격(天地懸隔)이다. 이르되 호리라도 어긋남이 없을 때 어떻습니까. 사운 천지현격이다.

毫釐; 호리(毫氂)와 같음. ()는 양사니 후에 리()로 지었음. 현응음의3. 10()를 가로되 리(). 지금은 모두 리()로 짓는다.

 

問 如何是不睡底眼 師云 凡眼肉眼 又云 雖未得天眼 肉眼力如是 學云 如何是睡底眼 師云 佛眼法眼 是睡底眼

凡眼; 世俗眼光 普通人的眼力

肉眼; 五眼之一 人間肉身之眼也

天眼; 色界天人所有之眼 人中修禪定可得之 不問遠近內外晝夜 皆能得見

佛眼; 五眼之一 佛名覺者 覺者之眼云佛眼 照了諸法實相之眼也 又別於前之四眼 四眼至佛則總名爲佛眼 毘尼止持會集十四 佛眼 謂具肉天慧法四眼之用 無不見知 如人見極遠處 佛見則爲至近 人見幽暗處 佛見則爲明顯 乃至無事不見 無事不知 無事不聞 聞見互用 無所思惟 一切皆見也

法眼; 五眼之一 分明觀達緣生差別之法 謂之法眼

 

묻되 무엇이 이 자지 않는 눈입니까. 사운 범안(凡眼)과 육안(肉眼)이다. 우운(又云) 비록 천안(天眼)을 얻지 못했지만 육안력(肉眼力)이 이와 같다. 학운(學云) 무엇이 이 자는 눈입니까. 사운 불안(佛眼)과 법안(法眼)이니 이는 자는 눈이다.

凡眼; 세속의 안광(眼光). 보통 사람의 안력(眼力).

肉眼; 5안의 하나. 인간 육신의 눈임.

天眼; 색계의 천인이 소유한 눈. 인중(人中)에서 선정(禪定)을 닦아 가히 그것을 얻으며 원근ㆍ내외ㆍ주야를 묻지 않고 모두 능히 득견(得見).

佛眼; 5()의 하나. 불타를 이름해 각자(覺者)며 각자의 눈을 일러 불안이라 함. 제법실상을 비추는 눈임. 또 앞의 4안과 구별하자면 4안이 불()에 이르면 곧 총명(總名)이 불안이 됨. 비니지지회집14. 불안(佛眼) 이르자면 육천혜법(肉天慧法) 4안의 용()을 갖추어 견지(見知)하지 못함이 없다. 예컨대() 사람이 보면 극히 먼 곳이지만 불타가 보면 곧 지극히 가까움이 되고 사람이 보면 유암(幽暗)한 곳이지만 불타가 보면 곧 명현(明顯)이 된다. 내지 보지 못하는 일이 없고 알지 못하는 일이 없고 듣지 못하는 일이 없으며 들음과 봄을 호용(互用)하여 사유하는 바가 없이 일체를 모두 본다.

法眼; 5안의 하나. 연생(緣生)의 차별의 법을 분명히 관달(觀達)함을 일컬어 법안이라 함.

 

大庾嶺頭趂得及 爲什麽提不起 師拈起衲衣云 你甚處得者箇來 學云 不問者箇 師云 與麽卽提不起

大庾嶺; 爲通往嶺南的五條要道之一 位於江西大庾縣南 廣東南雄縣北 古稱塞上 漢武帝遣庾勝兄弟征伐南越 庾勝據守此嶺 遂稱大庾 又稱庾嶺 臺嶺山

提不起; 惠能辭違祖已 發足南行 兩月中間 至大庾嶺 逐後數百人來 欲奪衣鉢 一僧俗姓陳 名惠明 先是四品將軍 性行麤慥 極意參尋 爲衆人先 趁及惠能 惠能擲下衣鉢於石上云 此衣表信 可力爭耶 能隱草莽中 惠明至 提掇不動 [六祖壇經]

衲衣; 又作納衣 糞掃衣 弊衲衣 百衲衣 卽以世人所棄之朽壞破碎衣片 補修縫綴所製成之法衣 比丘少欲知足 遠離世間之榮譽 故著此衣 糞掃衣就衣材而名 衲衣就製法而說 又比丘常自稱老衲 布衲 衲僧 衲子 小衲等 僧衆呼爲衲衆 皆取著衲衣之義

 

묻되 대유령두(大庾嶺; 大庾嶺)에 쫓아() 미침을 얻었거늘 무엇 때문에(爲什麽) 들어 일으키지 못했습니까(提不起). 스님이 납의(衲衣)를 집어() 일으키고 이르되 네가 어느 곳(甚處)에서 자개(者箇; 이것)를 얻어 왔느냐. 학운(學云) 자개(者箇)를 물은 게 아닙니다. 사운 이러하다면(與麽) 들어() 일으키지 못한다.

大庾嶺; 영남으로 통왕(通往)하는 다섯 줄기의 요됴(要道)의 하나가 됨. 강서성 대유현 남쪽과 광동성 남웅현 북쪽에 위치함. 옛 호칭은 세상(塞上)이었음. 한무제가 유승(庾勝) 형제를 파견하여 남월(南越)을 정벌했는데 유승이 이 고개에 기대어 지켰으므로 드디어 대유(大庾)라고 일컬었음. 또 호칭이 유령(庾嶺)ㆍ대령산임.

提不起; 혜능이 5조를 사위(辭違; 辭別)한 다음 발족하여 남행했다. 두 달의 중간에 대유령에 이르렀다. 뒤를 쫓던 수백 인이 와서 의발을 뺏으려고 했다. 한 중이 속성은 진이며 이름은 혜명(惠明)이었는데 이전에 이 사품장군(四品將軍)이었으며 성격과 행위가 거칠고 조급했다. 뜻을 다해 찾으면서 중인의 선봉이 되었다. 쫓아서 혜능에게 이르자 혜능이 의발을 돌 위에 던져 떨어뜨리고 이르되 이 옷은 표신(表信)이거늘 가히 힘으로 쟁취하겠는가. 혜능이 풀숲 속에 숨었다. 혜명이 이르러 제철(提掇; 들다)하였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육조단경].

衲衣; 또 납의(納衣)ㆍ분소의ㆍ폐납의ㆍ백납의로 지음. 곧 세인이 버린 바의 후괴파쇄(朽壞破碎)의 옷 조각을 보수하고 꿰매어서 제작해 이룬 바의 법의임. 비구는 소욕지족(少欲知足; 욕심을 적게 가지고 만족할 줄 앎)하며 세간의 영예를 멀리 여의므로 고로 이 옷을 입음. 분소의(糞掃衣)는 옷 재료로 나아가 이름함이며 납의는 제작법으로 나아가 말함임. 또 비구는 항상 자칭하기를 노납ㆍ포납ㆍ납승ㆍ납자ㆍ소납 등이며 승중을 일러 납중이라 함도 모두 납의를 입는다는 뜻을 취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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